일반인용 해제
조선 후기의 중국어 학습서 ≪중간노걸대(重刊老乞大)≫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제목의 ‘老乞大’는 ‘토박이 중국인’이라는 뜻이다. 이 책 외에 ‘老乞大’라는 이름을 포함하는 중국어 학습서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으로는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1510년대),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1670), ≪평양판 노걸대언해(平壤版 老乞大諺解)≫(1745),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1763)가 있다.
≪노걸대(老乞大)≫의 우리말 번역본은 당대의 필요에 따라 중국어 원문을 수정하기도 하고 번역문을 새로 붙이기도 하는 등 그 때 그 때의 실용적 요구에 부응하여 편찬되었는데 이 책은 그 중 가장 나중에 간행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1795년(정조 19) 사역원(司譯院)에서 간행한 것으로 보이며 2권 2책의 목판본(木版本)이다. 상당히 많이 전하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만도 20여 종이 소장되어 있다.
사대와 교린 정책을 국시(國是)로 삼았던 조선 왕조는 대대로 중국어 학습을 강조하였는데 이 책이 간행된 정조대에도 이러한 전통은 계속되었다. 중국 땅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이미 발흥했음에도 여전히 중국어가 공식적인 외교 언어로서 부동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책과 같은 중국어 학습서의 간행은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계속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의 간행은 영조대의 업적을 계승하고 보완·발전시키고자 했던 정조대 어문 진흥책의 일환이라는 의의를 지니기도 한다.
이 책의 본문에는 조선을 출발한 말 상인이 북경에 가 말을 판 다음 조선에 돌아가 팔 물건들을 사 가지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일어나는 여행과 거래에 대한 내용이 대화체로 기술되어 있는데 당시 사람들의 사고 방식, 거래 풍속 등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 책은 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중국어사 연구, 조선조의 중국어 학습사 연구 등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용 해제
조선 후기의 중국어 학습서 《중간노걸대(重刊老乞大)》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제목의 ‘老乞大’는 ‘토박이 중국인’이라는 뜻이다. 이 책 외에 ‘老乞大’라는 이름을 포함하는 중국어 학습서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으로는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1510년대),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1670), 《평양판 노걸대언해(平壤版 老乞大諺解)》(1745),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1763)가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노걸대(老乞大)의 언해본 중 가장 후대본이라 할 수 있는데 상당히 많이 전하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만도 20여 종이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간행은 1795년(정조19 을묘)에 사역원(司譯院)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한문본인 《중간노걸대(重刊老乞大)》와 동시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책 모두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이 없지만 한문본 《중간노걸대(重刊老乞大)》의 권말에 보이는 ‘을묘중추(乙卯仲秋) 본원중간(本院重刊)’이라는 간기(刊記)와, 규장각에 소장된 《중간노걸대언해(重刊老乞大諺解)》의 앞 표지 상포각(上包角)의 자리에 보이는 ‘乙卯重刊’이라는 墨書가 일치함을 고려할 수 있다. 여기서 보이는 ‘을묘(乙卯)’는, 한문본의 刊記 앞에 적힌 교검관(校檢官) 이수(李洙) 등 7명, 교정관(校整官) 홍댁복(洪宅福) 등 10명, 서사관(書寫官) 최함(崔瑊) 등 10명, 감인관(監印官) 장수(張壽) 등 편찬에 관계한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의 활동 연대를 고려한다면 1795년이라 정된다. 이 밖에 정조대 전후에 전국에 산재했던 책판들을 기록한 《누판고(鏤板考)》(1796) 권 사 역어류(卷 四 譯語類)의 ‘老乞大一卷 諺解二卷 不著撰人名氏, 雜敍華語 用之象鞮較藝之時 其諺解則崔世珍撰 當宁乙卯 司譯院奉敎重訂. 司譯院藏印紙四牒九張’과 같은 기록도 이와 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이 책은 목판본(木版本)으로 2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정한 구절을 단위로 구분한 원문의 각 한자에 정음(正音)과 속음(俗音)의 한자음을 한글로 달고 그 아래 해당되는 원문에 대해 한글로 번역문을 부기하되 ○로써 원문과 번역문을 구분하였다. 판심(版心)에서 장차(張次) 아래 가로줄을 둔 것만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판식(版式)은 전대의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와 동일하다. 내용에 있어 《평양판 노걸대언해(平壤版 老乞大諺解)》의 科의 수 107이 111로 늘어난 것과 科가 바뀔 때 行을 바꾸어 새로운 行으로 시작하는 방식까지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의 경우와 같다. 그러나 구성과 체재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에는 每 科가 끝날 때에 함께 실려 있는 《평양판 노걸대언해(平壤版 老乞大諺解)》의 원문과 右側의 한자음(俗音)이 이 책에는 빠져 있는 것이다.
원문과 그 번역문 등을 전대의 《老乞大》 언해본들과 비교할 때 이 책에서는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의 원문과 번역을 그대로 받아들인 부분, 다시 《평양판 노걸대언해(平壤版 老乞大諺解)》의 원문과 번역으로 돌아간 부분, 전대본들의 원문과 번역 어느 것도 따르지 않은 채 이 책 독자적으로 새로이 수정을 가한 부분 등 다양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가 간행된 지 불과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간행된 이 책은, 지나치게 時俗을 따른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에 대한 불만에 입각한 옛것[《평양판 노걸대언해(平壤版 老乞大諺解)》]으로의 회귀라는 의의뿐 아니라 옛것으로 회귀하기에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기에도 불만인 부분들에 대한 새로운 수정과 번역이라는 의의를 가짐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당대의 필요에 따라 중국어 원문을 수정하기도 하고 번역문을 새로 붙이기도 했던 《노걸대(老乞大)》 언해본의 완결본이라 할 수 있다. 사대와 교린 정책을 국시(國是)로 삼아 대대로 중국어 학습을 강조한 조선 왕조의 전통이 정조대에도 계속된 바 중국 땅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이미 발흥했음에도 여전히 중국어가 공식적인 외교 언어로서 부동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이 이 책의 간행 배경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간행은 다른 한편으로 영조대의 업적을 계승하고 보완·발전시키고자 했던 정조대 어문 진흥책의 일환이라는 의의를 지니기도 한다.
이 책의 본문에는 조선을 출발한 말 상인이 북경에 가 말을 판 다음 조선에 돌아가 팔 물건들을 사 가지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일어나는 여행과 거래에 대한 내용이 대화체로 기술되어 있는데 당시 사람들의 사고 방식, 거래 풍속 등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해 주며 여기에 나타난 국어와 중국어는 국어사와 중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이 책의 언해문은 전대본의 언해문과 함께 국어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데 이 책에 나타난 언어 사실의 특징을 몇 가지 보이면 다음과 같다.
표기법에 있어서 합용병서가 쓰이되 ‘(하 68b)’, ‘(하 57b)’, ‘(하 58a)’과 같이 ‘ㅂ’계와, ‘지람(상 34a)’, ‘히라(상 54b)’, ‘져다(하 35b)’, ‘(상 35a)’와 같이 ‘ㅅ’계가 주로 쓰였음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문헌들이 그렇듯이 분철 표기가 확대되어 나타나는데 ‘먹으되(하 39a)’, ‘굵으니(하 50a)’와 같이 특히 용언 어간과 어미 사이의 분철 표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낫노라(상 1a)', ‘초날(상 1a)’과 같이 전대본에서 자음동화가 반영되어 나타났던 표기가 자음동화가 반영되지 않은 채 나타나며 ‘놉흐며(상 8b)’, ‘흔(하 58a)’과 같이 재음소화식 표기도 나타난다.
음운 면에 있어서 눈에 띄는 것으로는 ‘무어시(상 38a)’, ‘붓터(하 40b)’와 같이 원순모음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전대본에서 개음절로 끝나는 용언 어간과 ‘-아/-어’계 어미가 통합될 때 어김없이 w삽입이 일어났던 용례가 ‘두어(상 21a)', ‘보아시되(상 32a)’와 같이 w가 삽입되지 않은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적이다.
문법적 특징에 있어서는 ‘무르되(하 39b)’, ‘닙으되(하 47a)’, ‘먹으되(하 39a)’와 같이 ‘오’에서 ‘오’가 소멸하면서 후행 음절에 ‘오’의 원순성을 이동시키고 그 앞 음절에 매개모음의 형식으로 ‘오’의 흔적을 남긴 ‘-으되’의 어미구조체가 자주 등장함을 볼 수 있다. 문법화로 형성된 연결어미 ‘-(으)매’를 ‘져시매(상 1b)', ‘세매(하 54b)’ 등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의문형 어미 ‘-이여’를 ‘네 貴姓이여(상 7a)’, ‘네 귀 나히여(상 58a)' 등에서 볼 수 있다. ‘고(하 61a)’, ‘(하 64b)’ 등의 예에서 전대본의 ‘-’이 새로운 어간형으로 재구조화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이 시기 어두 경음화의 영향으로 전대본의 ‘긋’, ‘긧긧고’가 ‘(하 58a)’, ‘긋고(하 59ab)’와 같이 현대 국어의 어휘 형식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음을 알 수 있다.
홍문각에서 1984년 규장각 소장본을 저본으로 하여 영인하였다.
참조
① 참고문헌
金文雄(1984), 重刊老乞大諺解 解題, 弘文閣.
金完鎭(1976), 老乞大의 諺解에 대한 比較 硏究, 韓國硏究院.
方鍾鉉(1963), 一簑國語學論集, 民衆書館
石朱娟(2001), 老乞大와 朴通事의 諺解에 대한 國語學的 硏究.
安秉禧(1996), 老乞大와 그 諺解本의 異本, 인문논총 35,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최현배(1976), 고친한글갈, 정음사.
② 관련항목: 중간노걸대, 번역노걸대, 노걸대언해, 평양판 노걸대언해, 노걸대신석언해
③ 키워드: 정조(正祖), 사역원(司譯院)누판고(鏤板考), 판식(版式), 목판본(木版本), 합용병서, 분철, 자음동화, 재구조화, 원순모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