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학습서 <첩해신어>를 개수(改修)한 책이다. 원간본 <첩해신어>는 두 차례에 걸쳐 개수가 이루어졌는데, 그 중 1748년(영조 24) 첫 번째 개수본을 <개수첩해신어>라 하고, 1781년(정조 5) 두 번째 개수본을 <중간첩해신어>라 한다. <중간첩해신어>의 원본은 현전하지 않고, 이 복각본만이 남아 있다.
10권 12책의 목판본으로, 판심제는 <개수첩해신어>로 되어 있다. 본문은 히라가나로 표기한 일본어 문장 오른쪽에 한글로 주음을 달고, 왼쪽에 그 일본어 문장에 해당하는 한국어역을 한글로 기입해 놓은 대역 형식을 취하고 있다. 원간본 <첩해신어>와 <개수첩해신어> 그리고 <중간첩해신어> 등 약 100년간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같은 내용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사 및 일본어사의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문어를 반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자료들과는 달리 당시의 생생한 구어자료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평가될 수 있다.
규장각에 완질본, 낙질본의 두 종류가 일본 駒澤大學 濯足文庫에 한 질이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본을 저본으로 하여 일본 경도대학과 서울 홍문각에서 영인하였다.
[전문가용 해제]
일본어 학습서 <첩해신어>를 개수(改修)한 책이다. 책 이름의 ‘첩해신어’는 ‘새 말을 빨리 깨우친다’는 뜻으로, 여기서의 ‘신어’란 임진왜란 이후 실제로 일본인들에게 배운 새로운 일본어를 의미한다. 1676년 사역원 역관 강우성이 편찬한 <첩해신어>의 일본어로는 더 이상 당시 일본인들과의 대화가 불가능해지자, 원간본 <첩해신어>는 두 차례에 걸쳐 개수가 이루어졌다. 그 중 1748년(영조 24) 첫 번째 개수본을 <개수첩해신어>라 하고, 1781년(정조 5) 두 번째 개수본을 <중간첩해신어>라 한다.
<첩해신어>의 원간본과 1차 개수본과의 간격에 비하여, 첫 번째 개수본과 두 번째 개수본과의 간격은 매우 짧다. 대체적으로 두 번째 개수본은 1764년(영조 40)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한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개수첩해신어>가 간행된지 20년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에 두 번째 개수가 이루어진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담(李湛)의 서문에 의하면, 두 번째 개수본은 원래 최학령(崔鶴齡)이 개인적으로 간행했던 활자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책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사역원의 제거(提擧)로 있던 김백곡(金栢谷)의 권유에 의해 김형우(金亨禹)가 연재(捐財)하여 목판본으로 복각했다고 한다. <중간첩해신어>의 원본은 현전하지 않고, 이 복각본만이 남아 있다.
이 책의 개수 내용을 <개수첩해신어>와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倭諺大字를 새로 교정하고. 대역 한국어의 표기를 부분적으로 수정하였으며 형식면에서도 광곽(匡郭)의 외면에 절목(節目)의 이름을 수정하고 主客을 표시하여 내용의 흐름을 쉽게 구분하도록 하였다. 주객의 표시에서 主는 조선의 통신사를, 客은 대마도 또는 일본의 통신사를 가리킨다. 또한 권10은 첫 번째 개수본에서는 절목이나 주객표시가 없었으나 이 책에서 새로 절목과 주객표시 등이 설정되었다.
이 책은 내용면에서 원칙적으로 원간본과 개수본의 내용을 잇고 있지만, 삭제된 내용이 다량 존재하고 있으며, 용어의 변화가 있으며 원간본에서 보이는 한국어적인 일본어 표현 등이 수정되었다. 또한 내용의 관련성을 중시해서 재분류되었는데, 원간본의 권1의 뒷부분은 중간본에서 권2로, 권3의 뒷부분은 권4로 재구성되고 있다. 한편 이 책의 제10권 권말에는 일본 가나 문자의 학습을 위한 ‘伊呂波眞字半字竝錄, 伊呂波吐字, 伊呂波合字, 伊呂波眞字草字竝錄, 簡格語錄, 伊呂波半字竪相通, 伊呂波半字橫相通’ 등이 실려 있다.
10권 12책의 목판본으로, 판심제는 <개수첩해신어>로 되어 있다. 본문은 히라가나로 표기한 일본어 문장 오른쪽에 한글로 주음을 달고, 왼쪽에 그 일본어 문장에 해당하는 한국어역을 한글로 기입해 놓은 대역 형식을 취하고 있다. 원간본 <첩해신어>와 <개수첩해신어> 그리고 <중간첩해신어> 등 약 100년간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같은 내용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어사 및 일본어사의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문어를 반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자료들과는 달리 당시의 생생한 구어자료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평가될 수 있다.
이 책의 언해문에 나타나는 중요한 국어학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두된소리 표기는 ㅅ계 합용병서, ㅂ계 합용병서, 각자병서의 세 가지 방식이 나타난다. 즉, ㅺ(바), ㅼ(), ㅽ(맛당); ㅄ(으로); ㄲ(올꺼시니), ㄸ(뜯), ㅉ(찌라도), ㅆ(쓰고) 등이 나타난다. 특히 이 책은 각자병서의 표기가 현저하게 많이 나타나는데, 원간본이나 개수본에서의 합용병서가 많은 경우 각자병서로 표기되고 있어 주목된다. 다만 ㅽ이 ㅃ으로 표기된 예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음절말 자음 ㅅ과 ㄷ은 모두 ㄷ으로 표기되는데(바, 왇오니), 18세기 말의 거의 모든 문헌이 ㅅ을 쓰고 있음에 비해 이러한 표기법은 당시 왜학서의 일반적 특징이다. 분철표기는 원간본이나 개수본에 비해 현저하게 많이 나타난다(거륵이, 들으심이, 만남은, 잡으시면). 모음 사이의 ㄹㄹ은 대부분 ㄹㄴ으로 표기된다(진실노, 닐너도, 올니지, 전갈노).
t 구개음화가 비어두음절과 어두음절에서 다 나타나는데(나지, 보지, 관계치, 떠지지), 개수본에 대한 역표기도 보인다(뎓오니, 너기디, 휴디 cf. 개수본에서는 젿오니, 너기지, 슈지). 주격조사 ‘-가’가 체언말음이 ㅣ인 경우에는 대부분 쓰이나(우리가), 그 외의 모음의 경우에는 ‘-이’나 ‘-ㅣ’가 쓰인 예들이 보인다(萬事ㅣ).
일본어 본문에는 한국어에서 차용한 어휘도 보이며(いはち < 이바지, くわつり < 과즐), 한국어 본문에는 일본어에서 차용한 어휘도 보여(樣子, 迷惑) 상호 어휘의 간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규장각에 완질본, 낙질본의 두 종류가 일본 駒澤大學 濯足文庫에 한 질이 소장되어 있으는데, 일본에 소장되어 있는 것은 권1과 권2-10이 서로 다른 판본이어서 주목된다. 즉, 권1을 제외한 나머지는 규장각 소장본과 같은 종류의 판본으로 보이지만, 권1은 내용은 같으나 자체나 판식에 차이가 있다. 규장각본을 저본으로 하여 일본 경도대학과 서울 홍문각에서 영인하였다.
해제자: 연규동
참조
권1 1책
외국어학습서류